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3 - 회사생활
2024.01.15 - [분류 전체보기] -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1 - 취업준비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1 - 취업준비
정확하게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횟수로 13년 동안 겪었으며,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가짐과 생각이 얼마큼 중요한지 뼈저리게 알게 해 준 보상심리에 대하여 이 증상이 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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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6 - [분류 전체보기] -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2 - 회사생활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2 - 회사생활
2편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편 "취업준비"편을 먼저 보고 오시면 더 읽기 좋으실 겁니다. 2024.01.15 - [분류 전체보기] -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1 - 취업준비 우울증 보상심리 극복 소설 1 -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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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생각하던 자유였나?'
현장에서의 기본적이 일과는 아래와 같았다.
오전 6시 50분 TBM(아침체조) 오전 7시 ~ 오전 7시 15분 :아침 식사 개략 7시 15분 ~ 낮 12시 : 업무 낮 12시 ~ 오후 1시 : 점심시간 오후 1시 ~ 오후 6시 : 업무 오후 6시 이후 : 저녁식사 및 잔업, 자유시간, 회식 월(4주기준) 휴무일 : 6일 |
잘 짜여졌다고 해야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입사 전 당연히 주 5일에 9시 ~ 6시 근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이익을 쥐어 짜야하는 기업의 구조상 직원들은 어떤 일에서든 최대의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했고 최소 투입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직원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일이 많고 적음은 뒤에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오전 6시 50분에 아침체조를 하는것부터 삐걱거렸는데, 그 이유는 동기형과의 약간의 눈치싸움이 있었고 전날 회식 등으로 보통 취침시간이 12시~1시였기 때문이었다. 눈치싸움은 누가 먼저 일어나서 씻어야 하나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현장사무실 옆에 가설숙소를 짓고 거기에서 숙식을 했는데 방이 모자르자 동기형과 나에게 가장 큰 방이라며 방 하나를 주었다. 둘 다 알람은 6시 30분에 해놓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항상 '너부터 씻어' '형부터 씻어'가 계속되었다. 누구든 먼저 일어나서 씻는 사람이 잠을 무려 10분이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늦게 잤으니 아침에 피곤한 건 당연한 것인데 그때는 아침에는 당연히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 왜 우리는 9시 출근을 하면 안 되냐며 거이 매일같이 분노했다.
가끔은 알람을 못 들은척 6시 45분까지 누워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결국 체조에 늦기도 했다. 부장님 이하 다른 직원이 모두 모여서 체조를 하던 중간에 숙소에서 나와 합류했는데 참 싫었던 것 중에 하나는 체조를 하던 곳에서 숙소의 정문이 바로 보였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씻지도 않고 대충 옷만 입고 숙소 문을 열었을 때 체조를 하고 있는 현장 사람들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을러터진 신입들, 개념 없는 놈들이겠지?'
그러나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는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건설문화를 만든 게 다 너희 들이잖아!"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소위 미친 시스템을 왜 우리한테 강요하는 거야 라는 일종의 시위라고 할까.
하루의 시작부터 삐걱거렸으니 하루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루하루 적응해 갔다. 물론 일주일에 몇 번씩은 아침체조에 늦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달려 나가곤 했으나 공무팀의 일원으로 업무는 착실하게 수행했다.
참고로 건설회사에서 공무팀과 공사팀의 업무는 현장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공사의 진행을 관리하면 '공사', 공사에 쓰이는 돈과 보고자료 등 관리하면 '공무'로 구분된다. 보통 현장에서 주문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었는데 현장이 성공하려면 공사팀에 깡패 한 명 공무팀에 사기꾼 한 명이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이 말대로 보통 공사팀은 인상이 강해 보이는 분들이 공무팀은 말을 잘하고 인상이 서글서글 한 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신입사원이었기에 현장을 아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설계도서를 숙지하는 것이 출발이었다. 나는 공무팀이기에 기본적인 현장개요와 수량산출서, 도급 내역서를 위주로, 동기형은 설계도면과 수량산출, 투입 장비 등에 대해 파악했다. 나는 수량산출서가 엑셀로 되어 있기에 몇 천 줄이 되고 수십 개의 파일들의 수식이 잘 물려있는지, 수량산출서의 수량을 바꾸면 내역서의 수량이 업데이트돼 자동으로 금액이 바뀌는지에 대해 내역서 한 줄 한 줄마다 검증했다. 그렇게 몇 주 정도 했나? 대부분의 내역이 눈에 들어와 어떤 구조로 현장이 시공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때쯤 동기형은 현장에 투입되어 있었는데 그 당시 초창기였기 때문에 기초 시공 전 땅에 파일을 박고 있었다. 파일을 박기 위해선 엄청 큰 천공기기가 투입돼야 했기에 안전부터 인력, 일정까지 생각할 것이 정말 많았다.
'와 이런 생각과 행동들이 모두 모여서 현장이 완성되는구나'
처음 보는 이런 대규모 공사의 모습에 압도 되어서 그랬는지 아침의 짜증섞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우리나라의 일부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공무팀이지만 현장을 알아야 하기에 현장에 자주 나갔었는데 처음보는 복잡한 캐드 도면이 하나씩 실제가 되어 생긴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상상만 하던 현장이 현실로 보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랄까? 책에서 각종 공법에 대해 아무리 배웠어도 단순 암기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현장 배치이후 견학 한번만에 머리속에 아니 뇌리에 바로 꽂혔다. 대학생 때 현장견학을 가도 그냥 이렇구나 했었는데 내가 직접 일하는 현장이 생겨서 그런지 이 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한 번 본 것은 잊히지가 않았다.
동기 형도 공사팀의 팀장이 경험도 많고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려 한다며 밑에서 배울 게 정말 많을 것 같다고 좋아했었다.
첫 몇 주? 몇 달 동안은 드디어 내가 독립해서 내 일을 한다는 기쁨과 내가 번 돈으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또 나의 인생이 이제 시작된다는 벅찬 감동도 많이 생겼다. 실제로 첫 월급으로 본가에 TV를 당시 최신인 LCD로 바꾸니 얼마나 좋았는지... 브라운관에서 바꾸다보니 tv하나 바꿨는데 인테리어 한것 처럼 집에 달라졌다는 어머니의 웃음이 기억에 선하다.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고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겨우 입사했기 때문에 이직을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더 노력해야 현장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뭔가 문제가 시작된 건 현장배치 후 3~4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동기 형이 공사팀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아침에 일찍 시작하는 것만 빼면 다들 잘해주시는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동기형은 그 팀장과 트러블이 있었다. 다른 팀이었기에(내가 동생이었기에 아마 나에게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팀장이 무슨 일을 시키면 계속 5분마다 독촉을 해서 사람을 달구고 일주일에 3~4번을 회식하는데 술만 먹으면 소위 말하는 개가 된다는 것이었다. 개가 되면 쌍욕은 물론 소리를 지르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형이 이렇게 얘기할 사람이 아닌데....'
그분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000 기사 민원 관련 현황 보고서 하나 만들어 봐라"
"(1시간 후) 000 기사 아까 시킨 거 아직 안 됐나?"
"예... 아직 자료 취합 중이거든요 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0분 후) 00아, 아직도 안 됐냐? 너는 일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
"죄송합니다. 바로 마무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럴 거면 때려치워라"
일찍 만들어가면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 확인하며 이 부분은 조사를 '이'가 아니라 '가'로 쓰는 게 더 낫지 않느냐, 이 부분에는 '도'를 추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줄 간격은,,, 글씨 간격은,,, 이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는 조사도 모르냐? 책 좀 읽어라"
"어렸을 때 뭐 했니? 공부 헛했냐?"
또 공사현장 시공검측을 위해 현장에 나가려 하면
"너 어디야! 현장에 누가 나가라고 했어? 빨리 다시 들어오지 못해!"
"지금 감리단 000 이사님과 현장 검측 나가고 있는데요..."
"들어왔다가 000 과장이 대신 나가라고 해!"
"혹시 왜 그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너는 민원서류 만들게 있어!"
어떤 날은 민원서류 만드느라 검측을 못한 나머지 감리단에서 왜 검측을 안 하냐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해서 나갔다 오겠다며 허락을 구하니
"아직도 안 했어? 검측은 기본이야. 대학교 나왔는데 아직 이것도 안돼?"라고 말했다.
다른 팀인데, 동기 형이 표현을 안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 이유는 결국 이 팀장을 힘들어하던 동기형의 고충이 현장소장의 귀에 들어갔고 현장소장은 나와 동기형의 배치를 바꿨기 때문이다. 동기 형은 매번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사실 원망도 조금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 길래 버티기가 힘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뭐 공무팀에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겠지란 생각으로 공사팀으로 보내졌다.
공사팀에 가자마자 그 팀장도 자신의 잘못으로 팀원이 바뀐 걸 아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회식을 1번인가 2번인가 했었나. 역시나 술을 마시니 본색이 드러났다.
'그전에 걔(동기형)는 여기서 못 버티고 간 거다.'
'내 말대로만 잘하면 너 과장보다도 훨씬 일 잘할 수 있다.'등등 지금 생각하면 가스라이팅도 그런 가스라이팅이 없을 정도로 팀장이라는 직급을 이용해 팀원을 세뇌시키려 한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위에 얘기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가끔은 업무시간에 욕도 나오고 회식 중에 큰소리도 나고 매일 담배 심부름에 주말이면 차로 지하철역도 아닌 기차역까지 데려가 줘야 하고...
'나도 기차 타고 집에 가야 하는데...'
'내가 이러려고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한건가...'
'다른 친구들도 다 이럴까? 왜 나만 이렇게 지내는것 같지...'
그 시절 그 상황에서 가장 원망스러웠던 건 현장소장 이하 00 건설의 팀장급 정직원들이었다. 문제의 이 팀장은 프로젝트 계약직이어서 이번 현장까지 계약이 된 상태였고 나머지 팀장 부장 현장소장은 정직원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그에게 머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 그랬을까? 신입사원인 정직원이 이렇게 배치가 바뀌고 힘들어하는데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심지어 나이도 비슷한데...'우리 신입직원한테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한 마디였으면 어땠을까?
어느 날 평소처럼 우중충한 얼굴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볼 일을 보고 잠깐 사무실과 화장실 사이의 공간에서 쉬고 있는데 가슴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에 의한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불안과 공포, 두려움에 대한 박동이었다. 심호흡을 했다.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뱉고...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보자... 운동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 잠깐 차를 타고 나가 수영도 시작했다... 심장박동을 느끼고 몇 년동안이나 이 증상은 계속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근거렸고 특히 자려고 누우면 소리가 더욱 커졌다.
'나 이러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거 아니야?'
정말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과 시간 중 점심시간은 딱 한 시간이었는데 밥을 일찍 먹고 바로 옆에 숙소에 들어가서 대부분 낮잠을 자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낮잠을 자려고 높기만 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니 잠이 오질 않았다. 참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엄마한테 얘기해볼까?'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고 나의 결정을 가장 잘 이해해 줬던 사람은 엄마였지만, 현장에 간지 몇 달 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대기업에 취업됐다는 소식에 주변사람들은 그때까지도 축하한다며 부모님께 전화를 했고 부모님도 고맙다고 여기저기 밥도 사신 것 같았다.
'하 이거 쉽지 않네...'
결국 나의 이런 감정을 받아준 사람은 여자친구였다.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여자친구였지만 생각이 깊고 행동이 빨랐다. 내가 너무 힘들도 가슴이 뛴다고 하니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 중에 캥거루 캐어라는 게 있다며 직접 등을 쓰다듬어 주고 나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심장이 뛰는 게 멈추진 않았지만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하루하루 마인드가 깎여나갔다.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신입사원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주말에 친구를 만날 때면 항상 회사 욕만 했다.
"나 회사 때려치울 거야"
"진짜 팀장이 x 같고 비전도 없어 보여, 정말이지 토목을 전공한 게 후회스러워"
"지금이라도 월급 200만 주는 곳 있으면 당장 때려치우겠어"
친구들을 만나는 내내 이런 말은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해댔으니 그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아마 내가 안쓰럽기도, 듣기 싫기도 했을 것이다. 아마 헤어진 후에는 걔 이제 다신 못 만나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